꿈 깃든 이야기

기뻐할 수 없었던,
한국 최초의 금메달리스트

마라톤 왕 손기정

꿈 깃든 이야기

기뻐할 수 없었던, 한국 최초의 금메달리스트

기뻐할 수 없었던, 한국 최초의 금메달리스트 - 마라톤 왕 손기정
‘한국 대학생(koreanischer Student)이 세계의 건각들을 가볍게 물리쳤습니다. 그 한국인(der Koreaner)은 아시아의 힘과 에너지로 뛰었습니다. 타는 듯한 태양의 열기를 뚫고, 거리의 딱딱한 돌 위를 지나 뛰었습니다. 그가 이제 트랙의 마지막 직선코스를 달리고 있습니다. 우승자 ‘손’이 막 결승선을 통과하고 있습니다…’  - 독일역사박물관(DHM) 독일방송기록보관실(DRA) 자료
 1936년 8월 9일, 베를린올림픽 마라톤 경기에서 손기정이 1등으로 스타티움으로 들어왔을 때 독일의 중계 아나운서는 그를 한국인으로 소개했다. 제일 먼저 결승선을 통과한 손기정은 2시간 29분 19초. 당시 인간이 넘기 힘들다고 생각했던 마의 2시간 30분대를 넘어선 것이었다.
그러나 세계인들이 지켜보는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거머쥔 손기정의 표정에는 기쁜 기색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침착한 그의 표정은 오히려 우울해 보이기까지 했다. 경기를 마친 후 시상식에 오른 그는 고개를 푹 숙였다.
스타디움에는 금메달리스트 국가의 국기가 걸리고 국가가 울려 퍼졌다. 하지만 태극기가 아닌 일장기가 걸렸고, 애국가 대신 기미가요가 흘러나왔다. 손기정은 월계관을 쓴 머리를 더욱 아래로 숙였고 손에 든 월계수묘목으로 자신의 유니폼에 그려진 일장기를 가렸다.
당시 손기정과 함께 마라톤에 출전해 3위를 기록해 같이 시상대에 오른 남승룡은 훗날 이날의 기억을 이렇게 회고했다. “손기정이 묘목을 받아 그것으로 일장기를 가릴 수 있는 것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비록 일본국적으로 출전하여 딴 금메달이었지만 손기정의 우승소식은 조선인들에게는 큰 기쁨과 희망이 되었다. 조선의 신문들은 그의 금메달 소식을 사진과 함께 실었다. 그러나 신문에 실린 그의 유니폼에는 일장기가 지워져 있었다. 당시 여운형이 사장으로 있던 <조선중앙일보>는 인쇄품질이 나쁜 점을 이용해 그의 가슴에서 일장기를 지운 것. 나라를 뺏긴 조선인으로서의 작은 항거였지만 이 일장기 말소 사건으로 인해 <조선중앙일보>는 폐간되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조선으로 돌아온 손기정은 일본의 감시를 당해야 했다. 올림픽에서의 행동으로 인해 그는 총독부에 미운 털이 박힌 것. 손기정은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임에도 범죄자 인도처럼 밧줄에 묶여 조선땅을 밟아야 했고 환영인파도 없었다. 하지만 조선인들은 그를 영웅으로 칭송했으며 인기는 날로 높아졌다.
그런 손기정의 영향력을 무서워한 일본은 그가 마라톤을 할 수 없도록 방해했고 결국 그는 대학을 졸업한 후 광복되기 전까지 조선저축은행에서 은행원으로 일해야 했다.
손기정이 다시 마라톤계에 몸 담을 수 있었던 것은 광복이 된 후였다. 그는 각각 1947년과 1950년에 보스턴 마라톤에서 우승한 서윤복과 함기용을 감독으로서 훈련시켰으며 1948년 런던올림픽부터 1964년 도교올림픽까지 마라톤 대표팀 감독을 역임했다.
 1988년 서울올림픽에서 손기정은 성화 최종 봉송주자로 뛰었다. 가슴에 당당하게 태극기를 들고 성화를 손에 쥔 그는 금메달을 땄을 때와는 다르게 아이처럼 기뻐하며 펄쩍펄쩍 뛰었다.
그리고 1992년 8월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황영조가 마라톤에서 금메달을 땄을 때 손기정은 그 누구보다 기뻐하며 이런 말을 남겼다. “오늘은 내 국적을 찾은 날이야. 내가 노래에 소질 있다면 운동장 한복판에서 우렁차게 불러보고 싶다.”
한국교육개발원 www.kedi.re.kr e-Schoolzine https://hs.e-school.or.kr/webzine/vol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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